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풍함 사건 (문단 편집) === 장제스와 영풍함의 도착 === 쑨원은 각 함정들에게 황포 섬으로 집결할 것을 지시하고 [[쉬충즈]]가 지휘하는 북벌군에게 회군하여 토역군을 진압할 것을 지시했다. 6월 17일 아침, 외교부장 오정방, 위수총사령관 위방평이 초예에 탑승하여 쑨원에게 합류했다. 쑨원은 위방평에게 육군을 대사두에 집결시켜 해군과 호응하여 광저우를 탈환할 것을 지시했고 오정방에게는 각국 외교공관을 방문해 중립을 요구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대다수 인물과 세력들이 쑨원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오로지 [[천두슈]]가 영도하는 [[중국 공산당]]만이 천중밍을 반혁명분자로 규정하고 천중밍과의 단절을 선포했다.[* 이는 1922년 1월, 천중밍과 직접 회담했던 코민테른 대표 마링이 천중밍의 연성자치론에 실망하여 코민테른이 천중밍에게 관심을 끊었고 천중밍과의 접촉 자체를 중국 국민당과의 당대당 접촉으로 여겼지 천중밍 개인과의 접촉으로 여기진 않았단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영국과 미국은 쑨원이 단순한 이상주의자, 무모한 테러리스트를 넘어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인물이라 의심하여 그의 몰락을 기뻐하였고 채원배 등의 옛 동지들도 [[호국전쟁]] 이후 약법과 국회를 회복시켰던 [[리위안훙]]이 6월 11일 베이징에서 다시 총통에 당선된 것을 지적하며 [[호법운동]]의 당위성이 없으니[* 1916년 7월의 예를 떠올려 굳이 호법운동을 하지 않아도 북양정부가 약법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에 기대를 건 것이다.]대원수에서 사퇴할 것을 권고했다. 실제로 [[직예군벌]]들이 [[차오쿤]]을 대총통으로 옹립하기 위해 약법과 구국회 회복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8월 1일 구국회가 복구되었다. 하지만 쑨원은 사퇴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17일 오후, 8척의 군함이 집결하자 쑨원은 황포를 출발, 차왜포대를 거쳐 백아담으로 향했고 대사두와 백운산의 천중밍 부대를 향해 포격을 가했다. 천중밍 부대는 함포 사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나 육군이 부족했기 때문에 광저우를 탈환할 수는 없었다. 쑨원은 더 큰 배인 [[중산(해방함)|영풍함]]으로 이동했고 영파에 있던 장제스에게 <사태가 급박함. 신속하게 도착하기 바람.>이라는 전보를 보냈다. 전보를 받은 장제스는 분노로 날뛰었다. >"예상한 대로야! 내가 진작부터 예상한 대로라니까!" 장제스는 장징장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이 죽을 경우 가족들을 돌봐줄 것을 부탁하고 아내 천제루를 대동하여[* 장제스의 처가 식구들은 위험한 전쟁터에 천제루가 가는 것에 대해 반대했으나 천제루가 남편과 동행할 것을 고집하여 같이 가게 되었다.] 즉각 홍콩으로 이동하여 모터보트를 빌려 광저우로 이동했다. 6월 29일 장제스가 영풍함에 오르자 쑨원은 눈물을 흘리며 장제스를 반겨주었다. 장제스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 천중밍은 장제스가 '매우 많은 음험한 계략'을 꾸밀 것이라 것이라 경고했다.[* 장제스는 자신의 일기에서 자신이 도착하자 천중밍이 파랗게 질렸다고 쓰고 있지만 글쎄...] 이후 42일 동안 쑨원의 해군과 천중밍 부대 사이의 포격전이 벌어졌다. 장제스는 천제루를 갑판 아래에 은폐시키고 자신은 갑판에서 포격전을 지휘했다. 쉬충즈의 북벌군이 회군한다는 소식에 천중밍은 쑨원에게 화해를 제의했지만 쑨원은 거절했다. 이에 천중밍은 쑨원 휘하의 해군을 매수하여 3,4천 톤급 순양함 3척이 천중밍 측에 합류하여 쑨원에겐 1천톤급 이하의 소형 군함만 남게 되었다. 쑨원은 아직까지 자신이 통제하는 장주요새의 후방인 신조촌으로 퇴각하여 천중밍의 봉쇄를 피하려고 했다. 신조촌으로 가는 해로는 수심이 얕아 군함이 통과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쑨원은 가까스로 군함이 통과할 수 있는 위치를 발견하였다. 허나 7월 9일 오후 1시, 어주포대의 천중밍 부대가 장주요새를 공격했다. 수비대는 치열하게 저항하여 적에게 많은 타격을 주었으나 해군 육전대 지휘관 손상부가 천중밍에게 투항해버리면서 장주요새는 천중밍에게 함락되었다. 이로 인해 주강 하류로 퇴각하는 일은 불가능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